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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걷히는 새벽, 예실이르마크강이 도시를 감싸며 흐른다. 강물은 산맥 사이로 길게 굽이치며, 그 위로 아마시아(Amasya)의 하얀 집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갈색 창틀과 붉은 기와, 그리고 강에 비친 불빛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번져간다. 그리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절벽 아래로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고, 다시 그 위로 고대의 궁전과 성이 층층이 쌓여 있다. 이 도시의 풍경은 마치 비잔틴과 셀주크, 오스만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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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시아 산등성이에 우뚝 솟아있는 하르세나성. 여기에선 아마시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튀르키예문화관광부 제공



아마시아는 본래 폰투스 왕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3세기, 로마에 맞섰던 미트리다테스 대왕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도 자동차할부 시를 둘러싼 산악 지형은 천혜의 요새였고, 왕은 절벽을 깎아 왕궁과 묘실을 세웠다. 고대인들은 이곳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고, 왕은 신의 이름으로 도시를 다스렸다.

오늘날에도 강 건너편 바위산에는 거대한 왕릉과 궁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현지인들은 그것을 '암벽궁전(Kızlar Sarayı)'이라고 부른다. 수직 절 현대차2우b 벽에 새겨진 동굴과 기둥은 20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암벽궁전은 아마시아의 가장 오래된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로마가 폰투스를 정복한 뒤에도 이곳은 행정 중심지로 남았다. 제국이 바뀔 때마다 궁전의 용도만 달라졌을 뿐 절벽은 언제나 통치자의 거처였다.
다시 발길을 돌려 암벽궁전을 감싸는 우체국 행복패키지 예실이르마크강을 따라 걷는다. 도시 초입에서부터 만났던 이 강은 도시의 생명선이자 국경선이었다. 강은 도시를 두 갈래로 나누고, 다리마다 다른 시대의 흔적이 얹혀 있다. 그리고 돌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와 절벽 위의 고요가 묘하게 어울린다. 이 도시의 역사는 전쟁보다도 오래된 '강의 시간' 위에 흐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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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기름을 바르고 하는 경기인 '오일레슬링'



다시 강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산등성이 위로 우뚝 솟은 하르세나성(Harsena Castle)이 나타난다. 절벽의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 가파르고, 성에 오르면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폰투스 시대에 세워졌으나, 비잔틴과 셀주크를 거쳐 오스만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증축된 도시를 둘러싼 방벽. 하르세나성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왕자들의 수련장이었다.

오스만제국은 왕위 계승자가 될 왕자, 즉 셰흐자데들을 각 지방으로 보내 통치를 배우게 했는데, 그중에서도 아마시아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제국의 중심 이스탄불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외적 침입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메흐메트 2세(정복자 메흐메트) 역시 젊은 시절 이곳에서 행정과 전술을 배웠고, 훗날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할 때 보여준 냉정한 판단력은 이곳에서 단련된 것이라 전해진다.
성 안에는 병영과 행정청, 왕자의 거처가 함께 자리했다. 절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돌기둥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지고 중간중간 작은 창문처럼 뚫린 감시 구멍이 있다. 왕자들은 여기서 활쏘기와 전술훈련을 익히며, 실제 통치를 모의하는 법을 배웠다. 이곳에서 실패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장과 달리, 경험으로 변환되는 학습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마시아는 '왕자들의 학교'이자 '제국의 실험실'로 불렸다.
다시 예실이르마크강을 따라 내려가면 평야가 펼쳐진다. 이 평야는 전쟁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기의 장이기도 했다.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이곳에서는 오일레슬링(Oil wrestling) 경기가 열린다.



양우진 한국외대 국제관계학 박사



전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리브오일을 바르고, 상의를 벗은 채 씨름을 벌인다. 그러나 온몸에 바른 올리브오일로 상대를 붙잡는 것은 매우 어렵고, 높은 수준의 기술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순간의 방심은 곧 패배로 이어지고, 정당하지 못한 기술로 상대를 넘어뜨리면 오히려 비신사적 행동으로 여겨진다. 경기장은 함성으로 가득하지만, 승자는 늘 패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운다. '힘은 예의로 완성된다'는 오스만의 무사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이 전통은 셀주크와 오스만 시절부터 이어진 군사문화의 한 형태였다. 병사들은 전투에 앞서 씨름으로 체력을 단련했고, 왕자들은 그 경기를 지켜보며 병사들의 충성심과 질서를 평가했다. 곧, 오일레슬링은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라 제국의 통치 질서를 상징하는 일종의 '전사의 윤리 교본'이었다. 지금도 경기 전 선수들은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고, 경기장에 들어설 때는 알라 앞에 공정할 것을 외치는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처럼 아마시아의 역사와 문화는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결과물이다. 고대 폰투스의 왕릉이 절벽 위에 잠들어 있고, 그 아래에서는 오스만 왕자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으며, 오늘의 주민들은 그 길 위에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역사이자 인간의 수련장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해 질 무렵, 하르세나성의 성벽은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든다. 강 건너편에서는 모스크의 기도 소리인 아잔이 울리고, 시장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한때 제국의 왕자들이 세상을 배운 도시가,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 살아 있다. 그러나 도시의 공기 속에는 여전히 훈련과 절제, 명예와 품격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쟁의 도시였던 아마시아는 문명의 도시로 변모했다. 돌과 강, 기름과 땀, 신앙과 통치의 기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수천년을 지나며 제국은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사람들의 몸짓과 노래, 그리고 도시의 골목마다 스며 있다.



[옛 오스만 제국을 가다] 고대 폰투스 ‘암벽궁전’



양우진 한국외대 국제관계학 박사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